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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여행

병자호란 굴욕의 역사

by M.T 2024. 1. 30.

조선의 역사 중 가장 굴욕적인 사건은 무엇일까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병자호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 시간에 간단하게 배우고 넘어간 병자호란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병자호란
인조와 소현세자
굴욕의 역사인가?

 

 

병자호란

 

병자호란은 1636년 인조 14년 12월부터 다음 해 1월까지 청나라가 조선을 침입한 전쟁입니다. 

1627년 후금(후에 청나라가 됨)이 일으킨 1차 침입(정묘호란) 시 조선이 무방비 상태로 당하여 후금과 형제의 맹약을 맺고 난 이후 약 10년 만에 다시 발발한 전란입니다. 

 

동아시아 명청 교체기를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조선은 병자호란 이후에 수십만의 백성이 청나라로 끌려갔을 뿐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피해가 막심했습니다. 

 

 

병자호란의 발발

 

정묘호란 이후 후금은 조선에 많은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식량 지원과 명 정벌에 사용할 병선 뿐 아니라 조선에 형제 관계가 아닌 군신관계로 바꾸기를 요구했습니다. 후금의 요구에 조선에서는 척화론이 대두되어 후금과의 관계는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계속되는 후금의 무리한 요구와 척화론으로 인한 조선의 대응으로 인해 두 나라의 골은 깊어만 갔습니다. 후금에서 사신을 보내도 조선 임금은 직접 접견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청 태종 홍타이지는 조선을 침입합니다.

 

 

청을 잘 모르고 대응한 조선

 

1636년 12월 28일 청의 군대는 얼어있는 압록강을 건너 중간에 있는 산성을 모두 지나쳐 곧바로 한성으로 진격해 왔습니다. 

과거의 전쟁에서 그랬듯 중간 산성을 거쳐 오면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 줄로 예상했던 인조와 조정은 정묘호란 때처럼 강화도로 대피하려고 했으나, 청군의 엄청난 속도의 남하로 인해 강화도로 가는 길이 차단되는 바람에 1월 10일 긴급하게 남한산성으로 대피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성은 청군에 의해 함락됩니다. 

 

청군은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계속되는 조선군의 구원을 물리치며 인조를 강하게 압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조가 버티자 강화도를 공격합니다. 청군은 수군이 약하다고 판단하여 제대로 된 대비를 하지 않았던 조선의 수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청나라에게 강화도를 넘겨줍니다. 

 

남한산성으로 오던 구원군도 모두 격퇴당하고 가장 안전할 것이라고 믿었던 강화도마저 함락당하자 인조는 전의를 상실하고 1월 27일에 항복 문서를 보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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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도의 굴욕

 

인조는 삼전도에서 3번 무릎 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청의 예법대로 굴욕적인 항복을 합니다. 

 

삼전도의 굴욕을 계기로 조선은 청나라와 조공 책봉 관계를 맺게 됩니다. 

심양으로 방물과 세폐를 조공하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볼모로 보냅니다. 

조공 책봉 관계가 성립되면서 조선은 청의 연호와 책력을 채택해야 했고, 청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사대하기를 거부하는 신하는 파직해야 했습니다. 또한 군사적으로도 성곽을 보수하거나 새로 짓지도 못하게 되었고, 명나라 공격을 위한 병력도 파견해야 했습니다. 

 

 

마치며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했습니다. 조선의 최대 굴욕 병자호란은 적을 잘 파악하지 않고, 심지어 파악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태도로 인해 더욱더 굴욕적인 전쟁이 되었습니다. 

동북아 정세는 이미 명은 망해가고 있었고, 청은 거대한 세력을 갖추며 커나가고 있었습니다. 

좀 더 큰 그림을 보려고 했다면 청을 무조건 배척하고 맹목적으로 명을 따르려고 하지 않고 좀 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랬다면 이러한 굴욕이 좀 덜하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역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웁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개인적인 생각에만 갇혀 주변은 보고 있지 않은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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