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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여행

공주 공산성 천연요새로 역사여행

by M.T 2024. 2. 11.

공주에 가면 무령왕릉과 더불어 꼭 들려야 하는 곳이 있습니다. 

1500년 전에 만들어진 천연 요새인 백제의 공산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2015년 송산리 고분군과 더불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공주의 공산성으로 역사여행을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산성 입구
공산성 입구

 

 

공주 공산성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침입으로 백제는 당시 수도였던 한성을 포기하고 지금의 공주인 웅진으로 수도를 옮기게 됩니다. 잦은 고구려의 침입에 맞설만한 적절한 곳이 필요했던 백제는 가파른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에 북쪽으로는 금강으로 가로막혀있는 자연이 만든 천연 요새인 웅진에 성벽을 쌓고 산성 안에 왕궁을 건설합니다. 

 

산성은 해발 110m 능선과 계곡을 따라 쌓여져 있는 산성으로 성곽의 길이는 약 2,660m 입니다. 

 

현재 공산성에 가보면 성벽은 돌로 쌓아 올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공산성은 백제시대에는 흙으로 쌓아 올린 토성이었습니다. 

이는 2013년 집중호우로 성벽의 일부가 붕괴되어 알게 되었는데요. 

붕괴된 성벽은 판축기법(흙을 층층이 다져서 한 층씩 쌓아 올리는 건축기법) 을 이용하여 쌓인 것이 드러났습니다.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토성 위에 조선시대에 내구성 강화를 위해 돌을 쌓아 올려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전략적 요충지 공산성

 

공산성은 방어력을 극대화한 방어용 산성이었습니다. 

 

백제시대에는 웅진성,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고려시대 이후에는 공산성, 인조가 이괄의 난(1624)을 피해 산성에 머문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도 불렸습니다. 

산성 안에 왕궁 시설을 둔 독특한 형태인 공산성은 백제 웅진시대의 방어 거점이자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전략적 요충지로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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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유물의 발견과 역사의 재해석

 

2011년 공주 공산성에서는 글씨가 새겨진 옻칠 갑옷이 발견되었습니다. 

1400년 전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선명한 '정관 19년'이라는 정확한 연대가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정관 19년은 서기 645년 의자왕 재위 5년을 의미합니다. 

 

출토된 갑옷뿐 아니라 마갑과 불에 탄 화살촉이 많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의자왕이 부여에서 공주로 와서 공산성에서 나당연합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지 않았을까라는 추측으로 백제 멸망기의 정황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발견된 곳입니다. 

 

 

아름다운 성곽

 

공주 공산성은 한국의 어느 성곽보다 아름답습니다. 성곽을 따라 걸으며 공주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높은 능선 가파른 곳에 세워진 성곽 위를 걷는 것이 아찔하기도 하지만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기도 합니다. 

1500년 전 백제인이 왜 이곳에 성곽을 세웠는지 걷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어쩌면 이곳도 문화제 보호 차원에서 언젠가 성곽 위를 걷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며, 이 멋진 경험을 이미 해봐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공산성 성곽
공산성 성곽

 

 

공산성을 떠나며

 

고구려와 신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백제 문화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은 백제의 유물 몇 개만 보더라도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공주와 부여를 방문하여 그 찬란했던 백제의 유산을 직접 체험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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